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셀레우코스 제국 (문단 편집) == 경제 == 알렉산드로스 대제가 인도까지 이르는 새로운 교역로를 개척한 덕분에 헬레니즘 시대에는 인더스강에서 나일강까지 이르는 광대한 교역권이 형성되고 페르시아 제국이 저장해두던 막대한 귀금속이 시장에 풀려서 물가가 상승하고 투자와 투기 행위가 늘어났다. 그리고 화폐 경제가 중동 전체에서 일반화되고 공공 은행들이 당대의 대표적인 신용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투기 · 매점매석 · 과열 경쟁 · 대기업 경영 · 보험과 광고의 성장과 같은 새로운 산업과 다양한 상업 활동들이 성행했다. 제국 정부는 세수를 늘리기 위해 상공업을 장려하고 상공업자들에게 편의 시설을 제공했다. 항만 시설을 개수하고 해상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전함을 파견했으며, 도로를 개설하고 운하를 건설했다. 그리고 제국 정부는 마을과 도시에 국영 공장과 점포를 세워서 재정 수익을 늘렸다. 결과적으로 대규모 생산·교역·재정 체계가 성장하고 국가가 경제계의 큰 손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헬레니즘 시대의 번영에는 대도시의 성장이 영향을 미쳤다. 도시화가 촉진되면서 상공업이 성장하고 정부 기능이 확대되었으며 자영농들이 소작농이나 예속농으로 전락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도시로 이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향촌 지역에서 살았다.] 상술했듯이 헬레니즘 시대는 번영했으나, 번영은 주로 지배자, 상층 계급, 상인들에만 누렸을 뿐, 농민과 도시 노동자들에게까지 그 이익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3세기 아테네에서는 숙련 및 비숙련 노동자의 임금이 페리클레스 시대의 50% 이하로 떨어지고 생활비가 크게 상승했다. 그리고 대도시에서는 실업 문제가 심각해서 정부가 수많은 빈민들에게 곡물을 무상으로 배급해야 했다. 이로 인해 헬레니즘 세계에서 노예제는 쇠퇴했다. 이러한 현상은 스토아 철학의 영향이기도 했지만, 임금이 크게 하락해서 자유민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노예를 구입하는 것보다 더 저렴해진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제국 경제의 근간은 농업이었다. 강수량이 충분한 지중해 일대와 구릉 지역은 건지 농업, 강수량이 부족한 지역은 관개 농업 중심이었고,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 · 옥수스 강 일대는 운하와 강의 수로를,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는 지하수로망인 카나트 제도를 운용했다. 목축업은 제국 전체에서 이뤄졌지만, 국경 지역과 제국 내부의 유목민들이 목축업의 핵심이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토지 소유가 집중되고 농업 노동자의 지위가 하락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군주들은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해 왕령지로 만들고 측근들에게 하사하거나 소작농에게 임대했다. 왕령지를 경작할 의무를 맡은 헬레니즘 시대의 소작농들은 추수 이전까지는 경작지를 떠나지 못하고 국왕이나 지주가 지대로 받은 곡식을 시장에서 최고가로 판매할 기회를 잡기 전까지는 곡식을 처분해서도 안 되었다. 소작농 중 일부가 파업을 일으키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그들은 모두 세습적인 예속농이 되어 토지에 결박당했다. 독립적인 소농들 중에 상당수는 지주들과의 경쟁에 밀려 빚을 졌고, 빚을 갚지 못하면 예속농으로 전락했다. 상공업은 도시와 도시 근교, 향촌 지역에서의 식료품, 생필품, 각종 수공업 제품 거래가 주를 이뤘으며 사치품을 사고 파는 원격지 무역도 발달했다. 원격지 무역은 향신료와 상아, 값비싼 원목과 석재, 비단 등등의 사치품들이 주로 거래되었으며 제국은 아라비아 반도, 인도, 중앙아시아 등등 여러 지역과 교역을 진행했다.[* 이렇게 거래한 사치품들은 주로 수도인 셀레우키아로 유입되었다.] 그리고 해상 무역은 운임이 상대적으로 많이 저렴해서 활발하게 이뤄진 반면, 육상 무역은 운임이 비싸다보니 원격지 무역은 해도 제국 내부에서 각 지역들끼리 교역하는 것은 미진했다. 도시에서는 상설 시장은 농촌 지역에서 열리고 화폐로 재화를 교환했다. 통치의 기반인 군대에게 급료로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제국은 세금을 계속 화폐로 걷어야 했고, 그래서 화폐는 제국 경제의 핵심이었다. 초창기 제국에서 유통하던 화폐는 대제의 장군들이 페르시아 왕중왕들의 재보를 획득한 것을 대제가 직접 화폐로 주조하거나 대제 사후에 주조된 것이었다. 셀레우코스 제국은 주로 은화를 발행하고 금화는 아주 적은 양을 발행했는데, 이전에 발행한 화폐일지라도 회수하지 않고 자유로이 통용시켰다.[* 제국이 발행한 금화들은 선전용으로 쓰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그리고 타국에서 주조한 화폐와 아테네와 같은 다른 국가에서 주조한 표준 화폐도 허용했다. 통화 발행은 평시나 전시에 재정을 마련할 때나 화폐가 부족해서 금고가 충분치 않을 때 시행했다. 셀레우코스 제국의 은화 함량은 아주 서서히 증가해서 BC 164년까지 50%로 상승했다. 그러나 경쟁국과의 전쟁과 영토 상실로 인해서 함량이 낮아지고 무게도 가벼워져서 지속적으로 가치가 떨어졌다. 이 때문에 타국에서 발행한 고순도의 중량 화폐들이 제국에서 축장되는 현상이 벌어졌지만, 경쟁국의 왕들은 자국의 통화를 수출하여 셀레우코스 제국의 경제를 무너뜨리는 모략을 쓰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는 [[경상수지]] 적자를 의미한다. 셀레우코스 제국에 자국의 화폐를 잔뜩 유통시키려면 셀레우코스 제국의 재화를 대량으로 수입해야 한다. [[대영제국]]이 [[청나라]]의 물건을 수입하기 위해 전 세계의 은을 다 끌어모아다 바쳤던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셀레우코스 제국 경제를 자급자족 수준 이상으로 활성화시켜서 최종적으로는 더욱 강한 국방력을 소유하게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후로 이 넘쳐나는 군사력이 어디로 향할지는..(…) 또한 [[기축통화|기축통화국]] 지위라는 것이 이 시대에는 별 의미가 없었다. 이 시대의 화폐의 파워는 [[중앙은행]]의 신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화폐를 만드는데 사용된 금속의 가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쟁국의 화폐를 자신들의 이름을 새긴 화폐로 재주조해서 선전용으로 쓰기만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